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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으레 등장하는 기사가 있었다. 샐러리맨들의 ‘뽀-너스’였다. 20세기 들어 ‘샐러리맨’ 계층이 대거 등장하면서 연말 보너스는 새로운 사회 풍속도로 등장했다. 관청은 물론 은행이나 회사에서 연말 보너스 지급이 상례화됐기 때문이다. 작게는 월급의 10~20%부터 많게는 월급의 서너배까지 보너스는 주머니 빠듯한 월 주택매매시 세금 급쟁이들의 최우선 관심사였다.
‘대망의 뽀-너스 감로(甘露), 금일로서 패연(沛然)’(조선일보 1937년12월15일) ‘쌜러리맨의 활력소, 관청가에 ‘환소(歡笑)속사포’ (조선일보 1937년12월16일) ‘황금홍수! 금일의 뽀너스 사령’(조선일보 1938년 12월16일). 관공서의 경우, 12월 15일 전후 보너스가 지급됐는데, 부처별로 신용불량자 지급률과 액수를 둘러싼 기사가 쏟아졌다.
연말 보너스를 반기는 샐러리맨의 처지를 풍자한 만문만화가 안석주의 작품. 두둑해진 지갑덕분에 흥청망청 즐기는 직장인의 세태를 꼬집는다. 조선일보 1934년 12월13일자
◇경 원캐싱 추가대출 성전기의 보너스 대박
1929년 말 샐러리맨들의 부러움을 산 곳은 경성전기였다. 최고 월급 다섯배인 500%를 줬기 때문이다. 그해 9월12일~10월31일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에 100만명 넘는 인파가 몰리면서 전차 수입이 폭증한 덕분이었다.
‘조선박람회 때문에 약 40만원의 순이익을 얻어들였다 전하는 경성전기 회사 일본자동차회사 에서는 770여명의 종업원에게 대하여 50일 동안 노력 끝에 준다는 소위 위로금이 겨우 2원씩 밖에 되지 않는다 하여 자본가의 너무도 성의없는 그 태도에 새삼스럽게 세상을 놀래였다 함은 전일 보도한 바 이제 그렇게 인색하던 전기회사에서 내월 즉 12월의 연말 상여에는 동사 중역이나 사원들에게 보통 월급의 3배반 내지 5배(35할 내지 50할)에 해당한 큰 돈을 준다 하는 터인즉 이 한 가지 사실로도 폭리를 많이 내는 독점회사의 면목을 엿볼 수있음은 물론 긴축긴축하여 세상에서는 돈이 귀하다는 이때에 그네들만은 어떻게도 세월이 좋음을 알 수있을 것이다.’(금년의 연말상여는 京電 50할이 최다, 조선일보 1929년11월25일)
이밖에 미쓰이 물산 400%, 식산은행 300%, 조선우선회사 100%, 조선철도 150%, 동양척식회사 200%, 상업은행 250% 등 일본 회사나 관변은행의 보너스가 후했다. 조선인이 운영하는 한성은행도 250%로 좋았다
연말 보너스 지급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보너스를 샐러리맨의 감로라고 썼다. 조선일보 1937년 12월15일
◇보너스 경기의 바로미터는 유흥업소
보너스가 나오는 12월 하순이 되면 거리의 공기는 살짝 들떴다. 주머니 두둑한 월급쟁이 손님들로 술집이나 유곽같은 유흥업소가 붐비기도 했다.
‘뽀-너스 경기의 바로메-터는 무엇무엇해도 신정(新町) 유곽이다. 15일은 총독부를 비롯하여 시내의 각 관공서와 대회사 은행에서 일제히 뽀-너스 사령과 함께 현금 봉투를 주더니 자정 이후의 거리를 달리는 흥분된 택시는 너도 나도 하고 신정으로만 달렸다. 그리하여 15일 저녁부터 16일 새벽까지 하루밤 동안의 신정 유곽의 전 수입을 조사하였더니, 평시의 평균 2700원 대를 폭죽적으로 깨뜨리고 일약 6000원으로 분등(奔騰)하였다. 뽀-너스의 돌아가는 곳은 이러한 곳이기도 하다.’(유곽수입 3배 분등(奔騰), 조선일보 1934년12월18일)
‘보너스화(禍)’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보너스, 연말상여, 월급쟁이에게는 반가운 봉투일런지도 모르나/그 봉투 들은 채로 카페로 몰려가서 술먹고 행패하다가 경찰 신세까지 짐은 뽀너스-화(禍)’(팔면봉, 조선일보 1934년 12월17일)
연말 보너스는 주머니 얊은 샐러리맨들의 감로였다. 하지만 돈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사람들 등쌀에 가장은 물론 식구들도 골머리를 앓았다. 살림살이 쪼들리는 서민들의 비애는 늘 비슷한 것같다. 안석주가 쓰고 그렸다. 조선일보 1932년12월24일자
◇흥청망청 진고개와 한산한 종로
연말 거리 분위기는 일본인 중심 진고개(본정통)와 조선인 상점이 몰린 종로 네거리가 대조를 이뤘다. ‘길가는 사람들은 월급의 몇갑절씩이나 받은 윤택한 ‘뽀-너스’의 혜택인지 여자나 남자나 늙은이나 젊은이나 다 각기 손에 흥정한 종이 보퉁이를 들고 어깨를 서로 마주 겨누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것이 암만 보아도 새로운 정월을 맞이한다는 기쁨은 이곳의 이사람만이 독점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흥청거리는 진고개에 비해 종로는 한산했다. ‘우리의 중심지대인 종로의 네거리를 와 보면 연말대매출의 깃발만은 진고개 못지않게 상점문앞에 즐비하게 서있지만 정말 상점에 들어가 흥정하는 사람은 어찌 그리 적은지 물건팔이 상점원들은 옛날 이야기에 꽃을 피우게 되고 넓으나넓은 종로의 거리에는 다만 쓸쓸한 바람만이 상점의 처마끝을 스치고 지나갈 뿐이니 이 거리 이 사람들에게는 미구에 올 정월의 기쁨도 맛보지 못하는 듯…’(萬頃 人波의 본정통, 찬바람 부는 종로 일대, 이상 조선일보 1929년 12월31일)
이 때문에 ‘뽀-너스’! 뽀-너스는 적어도 월급쟁이들의 목을 축여주는 반가운 ‘오아시스’이다. 그러나 조선 사람으로 뽀-너스의 맛을 보게 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며 또 뽀-너스를 받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혜택을 입게되는 조선 상인은 또 몇사람이나 될 것인가?’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진고개만 殷盛, 종로는 의연한산, 조선일보 1929년12월16일)
연말 보너스로 흥청망청 쓰는 샐러리맨들의 진짜 속사정을 담았다. 조선일보 1934년12월20일자
◇쇼핑객 따라다니며 구걸하는 어린 거지
두둑한 보너스덕분에 흥청망청하는 계층이 있는가하면 빈곤층도 많았다. ‘세상 사람들은 ‘뽀너스’ 바람에 망년회니 연말간친회니 하여 마음껏 향락하면서 연말기분에 침혹하며 종로 네거리 각 상점에는 ‘세모대매출’ 깃발과 ‘네온싸인’의 장식이 찬란하여 불야성을 이룬 중에서 정월 맞이할 물건을 뭉텅뭉텅 싸가지고 따뜻한 가정을 찾아드는 사람이 연말이 박두한 근일에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반면에 거리마다 걸인군은 뒤를 따라다니면서 겨우 동전 한푼을 구걸하지만 어찌 그들의 실낱 같은 생명을 위하여 동정하는 사람이 있으랴….’
‘경성에 걸인이 넘친다’는 지적과 함께 이들의 참상을 생생히 전한다. ‘중학동 천변과 서소문정(町)근처에 진을 치고 ‘모루히네’ 주사에 침혹하고 있는 아편쟁이 거지와 욱정(旭町) 시장 뒤에서 썩은 과실로 굶주린 창자를 채우는 무리들이 있어 거리거리마다 걸인이 없는 곳이 없는 중 북촌에서 제일 번창한 종로 네거리에서 새해를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반면에 그들의 뒤를 쫓아다니는 어린 아이 거지들의 궁상은 빈궁의 쓰림을 여실히 나타내는 좋은 ‘콘타라스트’가 되어 있다. ‘(세모풍경 6-도시소음 장단맞춰 걸인軍의 행진, 조선일보 1932년 12월30일)
◇甘酒같은 월급쟁이의 뽀-너스
만문만화가 안석주는 보너스에 울고 웃는 샐러리맨의 애환을 이렇게 썼다. ‘감주(甘酒)와 같은 월급쟁이의 뽀-너스는 세모대매출의 상품에 세모대매출의 인육(人肉)에 햇빛본 곶감시설같이 스러져버리면 새해 신춘의 송구영신도 그것이 이앓는 소리가 된다.그래도 연하장에 댄 붓대는 근하신년이니 공하신희니-세상은 허울좋은 세상이다. 월급쟁이의 저자(도시)는 월급쟁이의 공상을 창조하며 깨뜨리는 곳이다.’(보-너스여 어서 오너라, 보-너스여 어서 가거라, 조선일보 1934년12월13일)
안석주는 보너스를 둘러싼 시원 섭섭한 마음을 이렇게 썼다. ‘어서 오너라 미쓰 뽀-너스, 어서 가거라 미쓰 뽀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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