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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나네Bonne Année!"
새해 인사다. 서로 마주치는 눈빛에는 해가 바뀌었음을 축하하는 기쁨이 가득했다. 해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 상환 가 뜨기 한참 전이었지만 광장은 벌써 새것들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창밖으로 소란스런 소리가 계속됐다. 나는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새날을 맞으리다! 35리터 배낭과 장비를 챙겼다. 언젠가 한 번 오르고 싶었던 토끼의 귀Oreilles de Lapin 쿨와르를 떠올렸다. 에귀베르트Aiguille 생애최초주택구입대출자격 Verte(4,122m) 북사면에 있고 '빙하의 바다'란 뜻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까지 스키로 내려올 수 있다. 나에게 등반은 끼니다. 어김없이 돌아와 멈추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나에게 등반은 바닷물과 같다. 마실수록 갈증을 일으킨다. 등반은 불완전함을 대면할 때 삶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다. 오르려는 욕망은 끝없이 뻗어가는 나무 무직자즉시대출 의 본능과 같다. 뿌리를 단단히 내려도 위로, 더 위로 향하려는 그 열망은 본능이고 숙명이다. 새해 첫 등반을 결정하고 나서야 잠에 들었다.
새해를 축하하러 샴페인을 들고 발마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각자의 사연을 담아 샴페인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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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로 덮인 알파인 지대
우체국을 지나 약속 장소인 발마 광장의 동상 앞에 섰다. 바닥에는 깨진 샴페인 병조각들이 널려 있었다. 지난 밤 축배를 나누고 빈병을 깨뜨려 새해를 축하한 흔적이었다. 어제 광장을 메운 보리수꽃 향의 정체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샴페인 향이었다. 멀리 파스칼Pascal.T이 보였다.
meet 고사장"본나네Bonne Année!"
파스칼이 새해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산행을 일찍 마치고 올 수 있을까? 오후에 가족들과 식사하러 안시Anncey로 가야 해."
나를 보자마자 파스칼이 말했다. 샤모니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안시 출신인 그는 부모님과 새해 첫날을 보내기로 한 모양이다. 하지만 등반을 거르지 못해 나온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어서 빨리 끼니를 때워야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와 함께 서둘러 들머리 그랑몽테Grands Montets로 출발했다. 보통은 아래에서부터 올라가지만 파트너인 파스칼의 사정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랑몽테 정상까지 가서 스키로 토끼의 귀 쿨와르로 향했다.
그랑몽테는 여러 스키 하강 루트가 있지만 현지인들만 아는 코스가 바로 '토끼의 귀' 루트다. 이름처럼 토끼 귀를 닮아 지어졌다. 등반 난도는 3~4급 정도로 높지 않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아 위험도가 올라간다. 그랑몽테에서 북서쪽으로 내려가면서 귀 모양의 바위를 찾았다. 손바닥에 눈송이를 올리고 입술을 도톰하게 오무렸다가 입김을 훅 불었다. 날리는 눈 결정이 햇빛에 부서졌고 눈썹에 내려앉은 것들은 체온에 녹아 물방울로 변했다. 신설이었다. 밤사이 10cm 눈이 내렸다. 마을에는 눈 소식이 없었는데, 3,000m 알파인 지대에 밤사이 눈이 내린 것이다. 걱정할 정도의 양은 아니었지만 신설은 가벼워서 조심하는 게 좋다. 스노 샤워를 일으켜 등반에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가파른 경사에서 스키 하강. 대범하게 균형을 잘 잡는 기술이 필요하다
계곡을 횡단해 짧은 로프하강을 한 번 한 후 쿨와르 하단에 붙었다. 등반을 위해 스키를 벗어 배낭에 묶었다. 스키를 배낭에 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A-프레임 방식이다. 스키를 양쪽에 대각선으로 배치해 배낭 측면에 고정한다. 다음, 스키탑 부분을 고무 스트랩을 사용해 묶는다. 장점은 배낭의 무게가 좌우로 분산되어 안정적이고 나무나 바위에 걸리는 위험이 적다. 장시간 스키를 메고 걸어야 한다면 A-프레임 방식이 좋다. 다른 하나는 대각선Diagonal방식으로 배낭 하단의 전용 고리나 스트랩에 스키 테일을 삽입한다. 배낭 상단에는 측면 스트랩을 이용해 스키의 탑을 고정한다. 스키를 부착하고 떼는 과정이 빠르고 쉬우며 좁은 지형에 유용하다. 반면 A-프레임 방식보다 균형감이 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스키를 A-프레임으로 메고 아이스바일을 바둑판만 한 얼음이 드러난 설벽에 걸었다. 출발시간 오전 10시는 '성숙해지는 순간'이다. 쿨와르를 따라 햇빛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침은 먹었어?"
파스칼이 물었다.
"나오면서 스프에 바게트를 넣어 먹었어. 며칠 지나 단단해진 빵을 무엇으로 부쉈는지 알아?"
"망치?"
"망치가 없어서 피켈로 부쉈지"라고 말하면서 그는 손에 든 아이스바일을 보여 줬다.
"정말? 역시 알피니스트."
멀리 몽블랑 정상이 보인다. 드류빙하를 따라 내려가면서 하강 길을 찾아야 한다.
"출발." 외침이 계곡에 울렸다. 온전한 격리의 시간이 시작됐다. 세상 경계를 넘는 두려움으로 외로움을 걷어내고 발을 툭툭 차서 크램폰 앞날로 설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위에서 분설이 쏟아졌다. 신설이라서 그러려니, 이빨을 드러낸 세락은 원형극장의 첨탑이 되고, 우리는 경기장에 들어선 검투사처럼 비장해졌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우리 둘뿐. 스스로를 살피고 위로하며 올랐다. 100m 정도 오르고 물을 마시기 위해 배낭 어깨끈에 피켈을 꽂았다. 호스 끝 바이트밸브Bite Valve를 빨아 보니 호스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호스를 둘러싼 단열튜브도 소용없는 셈이었다. 아침기온이 영하 13℃로 낮았다. 배낭 안 물주머니보다 주로 바이트밸브에 남아 있는 물이 얼기 쉽다. 밸브를 이로 물어 얼은 부분을 부수며 녹여 주면 된다. 하이드레이션팩Hydration Pack은 편하게 물을 휴대하고 마실 수 있어 등반시간을 줄여 준다. 추운 날은 입에 닿는 밸브가 얼지 않도록 일정시간마다 물을 마셔 주는 것이 좋다.
등반 속도는 체력을 높이고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면 빨라진다. 미국 백컨트리스키어 코디 타운센드Cody Townsend는 "속도는 곧 안전On speed as safety"이라고 말했는데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어야 안전하다는 뜻이다.
깨끗한 캔버스에 붓질하듯 하강
쿨와르의 길이는 150m로 1시간 40분 만에 이곳을 통과해 안부에 도착했다. 이날 등반의 종료지점이었다. 에귀베르트 북벽, 난블랑쉬Nant Blanche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이었다. 가까이 드류봉les drus,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 첨탑과 멀리 몽블랑Mont Blanc 정상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배낭을 벗어 스키를 내려놓고 전환을 시작했다. 전환은 트랜지션이라고도 하는데 오르거나 내려가는 모드로 장비와 세팅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스키등반에서는 하강모드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효율적인 트랜지션은 스키등반에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특히 악천후나 긴급 상황에서 시간을 절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빙하가 갈라진 틈을 찾아 스키 하강을 하는 중. 빙하 스키는 눈보다 회전 시 스키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서 바인딩 이탈 계수인 딘DIN을 강하게 조여 스키 이탈을 막아야 한다.
파스칼이 배낭에서 등산용 칼과 빵을 꺼냈다. 품속에서 작은 캔을 꺼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어리 통조림이었다. 빵을 가르더니 정어리를 채워 먹기 시작했다. 차가운 생선은 비린내가 날 텐데 그는 맛있게 먹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난블랑빙하를 따라가다 드류빙하와 합쳐져 메르드빙하까지 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표고차는 1,400m, 메르드 빙하에 도착하면 다시 모테산장까지 올라 스키 전환 후 발레블랑쉬 클래식 루트를 따라 샤모니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파스칼이 서둘러 스키 하강을 시작했다. 신설이 내린 후라 우리가 처음으로 트렉을 만들면서 내려갔다. 눈이 솜처럼 부드럽게 몸을 밀어 올렸고, 깨끗한 캔버스에 턴으로 붓질을 하듯 내려갔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침묵의 설원을 깨우고, 달리고, 소리치며 대자연과 공유한 비밀의 암호를 풀었다. 오늘 우리는 이 산의 첫 손님. 스키 자국은 별과 별을 잇는 은하수처럼 설원에 새겨졌고, 신비한 세상의 경계를 넘어설 때는 경외심마저 느껴졌다.
파스칼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배낭에서 물기가 마르지 않은 크램폰을 꺼내 테라스에 놓았다. 날이 무뎌진 피켈도 가지런히 옆에 놓았다. 자일을 꺼내는데 아이스스크루 두 개가 딸려 나오다 바닥에 떨어졌다. 이가 두 곳 나가 있었다. 얇은 얼음에 급히 설치하다가 바위에 긁힌 것이다. 정비는 나의 몫이다. 배낭을 말리려 벽에 매달았다. 빈 배낭처럼 속에서 허기가 느껴졌다. 먹을 것을 찾았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하는 후배 H가 들렀다. 그는 삼척 출신으로 한국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하다가 유학길에 올랐다. 저녁으로 문어를 골랐다. 문어는 잘 삶아 초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맛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화이트 와인에 마늘 한 톨과 로리에를 넣고 은근한 불에 문어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삶았다. 마늘과 양파를 볶아 향을 낸 후 토마토를 넣고 문어와 함께 20분을 더 졸였다. 이탈리안 파슬리를 올리고 포카치아Focaccia와 곁들여 내놨다. 루치아나Luciana식 문어 요리라고 했다. 변변한 주방기구도 없는데 솜씨가 좋았다. 먼 타향에서 밥상머리에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설악산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첫 피치에서 하강 하는 모습. 안정적인 A-프레임 방식으로 스키를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묶어 준다. 얼음이 뒤덮인 바위에 크램폰이 긁히는 소리마저 정겹다.
당시 설악산 등반을 마치고 포구에 들렀다. 펼쳐 놓은 좌판 앞에 걸음을 멈추자, 난전 주인 할머니는 바닷바람에 갈라진 손으로 매섭게 문어 대가리를 내려쳤다. 문어가 꿈틀댔다. 살아서 선도가 좋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문어를 담아 주는 할머니의 손은 얼마나 짤까? 수십 년 동해 바닷물에 손을 담가 손가락 마디, 손금 사이, 주름마다 소금기가 뱄겠지. 그가 담아준 문어는 따로 간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문어숙회를 만들어 먹으며 산 이야기로 밤을 보냈었다.
"늦은 나이에 선택한 유학길이 쉽지 않습니다. 둘째가 생겨 부담감이 더해졌어요. 아내에게 '돌아갈까' 물어보니,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걱정 마.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문어는 처음 먹어본다. 귀국하면 우리 둘이 문어 집이나 해볼까?"
눈사면에 손이 닿을 정도면 45도 이상 되는 경사면. 턴할 때 중력을 이용해 점프를 해준다. 순간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실없는 소리에 그는 대꾸하지 않고 나에게 질문했다.
"근데 여기서 뭐 먹고 살아요? 내가 먹을 거 좀 만들어 놓고 갈게요."
그렇게 그는 간 고기, 토마토로 데우기만 하면 되는 스프를 잔뜩 만들어 병에 담아 주고 갔다.
식탁에 앉았다. 스프 위에 말라버린 빵조각이 사뿐히 내려앉은 풍경이 넉넉했다. 새해 첫날 떡국 대신 따뜻한 토마토 스프로 한 끼니 넘기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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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남은 바게트는 수분이 사라질수록 돌덩이처럼 단단해진다. 잘게 부숴 따뜻한 스프에 넣어 먹으면 좋다. 프랑스식 양파 스프에도 넣고, 병에 보관해 요리용 빵가루로 사용하기도 한다. 피켈을 사용할 때 너무 강하게 치면 가루가 사방으로 튈 수 있으니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요령이다. 집밖에서는 오르는 용도로, 집안에서는 요리용으로 피켈을 사용한다.
토끼의 귀 쿨와르Couloir des Oreilles de Lapin
쿨와르 상단에 토끼의 귀 모양을 한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등반보다는 겨울철 스키 하강을 주로 한다. 쿨와르는 65도 정도의 경사지만 접근을 위해 필라 쪽으로 등반하면 난이도는 훨씬 높아지며, 믹스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게 좋다. 드류봉 등반을 위해 낙석이 많은 서벽 아래부터 접근하기보다 그랑몽테에서 스키로 하강해 어프로치하면 안전하다. 등반한 루트로 하강해 메르드 빙하로 내려설 계획이라면 빙하로 내려서는 둔덕에 눈이 없어 길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확인 후 내려가는 게 좋다.
케이블카 정보
아르장티에르에서 출발하는 그랑몽테 케이블카는 2018년 9월 중간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운행이 중단되었다. 이후 복구 및 재건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2024년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했다. 완전한 재가동은 2026/2027년 겨울 시즌으로 예상하며, 현재는 대체 리프트를 이용해 일부 스키 구역에 접근할 수 있다. 샤모니 시내에서 아르장티에르까지는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면 되고 게스트 카드 소지자는 무료이용 가능하다. 카드는 호텔 등 숙소에 요청해 받을 수 있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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