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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첫 추경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특활비 논란이 불거졌다.[사진｜뉴시스]


지난 4일 소비쿠폰 지급을 위한 31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 학원강사 월급 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 추경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은 소비쿠폰 지급과는 무관한 주제로 갑론을박을 벌였다.
추경안에 포함된 대통령실ㆍ법무부(검찰)ㆍ감사원ㆍ경찰청 특수활동비(특활비) 때문이다.[※참고: 특활비는 기밀이 필요한 국정활동에 쓰는 비용을 의미한다. 기관별로 보면 대통령실 41억2500만원, 감사원 대기업취업정보 7억5900만원, 법무부 40억400만원, 경찰청 15억8400만원으로 총 104억7200만원이다.]
■ 특활비 부활 논쟁 = 국민의힘은 곧바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했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이 특활비 용처를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통령실(82억5100만원)과 검찰(80억원)의 특활비를 전액 요구하는 삭감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왜 특활비를 전액 삭감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께서는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했던 과오가 있다"면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특활비 삭감 이후 대통령실이 반발하자,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어디다 썼는지도 모를 특활비를 삭감한 것인데, 해바라기론 이것 때문에 살림을 못 하겠다고 하는 건 사실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라고 말했는데, 이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아니냐는 거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너무나도 후안무치하고 내로남불한 얘기"라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자기들이 야당이었을 때는 대통령실 특활비가 불필요하다더니 자기들이 집권하니까 특 서민금융119 활비가 꼭 필요하다는 건 전형적인 이중잣대"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임기 1년 차부터 특활비를 삭감했느냐"면서 "(윤 전 대통령이) 3년간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출근도 제대로 안 하고, 허구한 날 관저에서 폭탄주나 마신다고 하니까 도대체 (특활비를) 어디에 쓰는지라도 알자고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당시 대통령실이 특활비 유용 의혹 해명을 거부했기 때문에 대통령실 특활비 전액 삭감안을 의결한 것"이라면서 "특활비 문제 개선을 약속하고 협상할 기회가 남아 있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협상 대신 불법 계엄을 선택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의 특활비 부활을 두고 논란이 많다. 항의 서한을 주고받는 유상범(왼쪽) 국민의힘 의원과 우상호 정무수석.[사진｜뉴시스]





■ 각 당 주장 검증해보니… = 각자의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국민의힘의 주장처럼 이전 정부에선 '없어도 됐던 특활비'가 현 정부에선 '반드시 있어야 할 특활비'로 둔갑해선 안 된다. 4일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대통령실을 항의차 방문한 자리에서 우상호 정무수석비서관이 "막상 운영하려고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말 바꾸는 일 없도록 신중하게 해나가겠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검찰 특활비까지 편성한 이재명 정부의 취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검찰 특활비를 삭감한 건 검찰이 지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삭감했던 검찰 특활비가 무덤에서 부활한 경위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따지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검찰의 칼도 정의로운 칼로 바뀌었나, 검찰이 충성스러운 사냥개가 될 것이란 믿음이 생겼나."
그렇다고 이소영 의원의 반박이 부당한 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은 '특활비를 유용했는가'란 의혹에 단 한번도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특활비 전액 삭감에 윤석열 정부가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계엄으로 돌파하려 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 의원의 주장에도 오류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임기 1년 차부터 특활비를 삭감한 건 아니지만, 특활비 증액 문제를 공식적으로 지적하기 시작한 건 1년차인 2022년 9월부터다.
■ 특활비 비판 자격 있나 = 그렇다면 특활비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양당엔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할 만한 자격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양당 모두에 없다. 두개 사례를 보자.
먼저 문재인 정부 사례다. 2018년 김정숙 여사의 의전활동과 옷값에 청와대 특활비를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하 납세자연맹)이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면서 비공개로 버텼다.
이후 납세자연맹이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해 1심의 승소까지 받아냈지만, 청와대는 항고로 시간을 끌었다. 결국 2022년 관련 자료들은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됐고, 2심은 각하됐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자료를 요청할 수 없게 돼서다. 납세자연맹은 같은 해 4월 대통령기록물법에 위헌성이 있다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심리 중이다.
다른 하나는 윤석열 정부 사례다. 납세자연맹은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 특활비 내역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자택 인근 식당에서 450만원 상당의 저녁 식사를 했고, 이를 특활비로 결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었다. 같은해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영화 관람에 특활비를 썼다는 의혹도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국가기밀 유출과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납세자연맹은 이번에도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9월 1심(대통령실 항고)과 2024년 4월 2심(대통령실 재항고)에서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정보공개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대법원에서 3심을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도 윤석열 정부도 특활비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사진｜뉴시스]





■ 없애거나 투명성 확보하거나 = 두 사례의 공통점은 문재인ㆍ윤석열 정부 모두 특활비 사용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야당일 때만 정부에 '왜 특활비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느냐'고 지적한 것도 똑같다. 결국 '× 묻은 정당'이 '겨 묻은 정당'을 나무란 것이나 다름없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어느 정부도 특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면서 "정말 국가안보상 필요한 특활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특활비를 없애야 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똑같을 거라고 보는 건 섣부르다. 이재명 정부 대통령실은 "책임 있게 쓰고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재명 정부가 약속을 지킬지는 검증해야 한다. 국민에게 내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번 특활비 편성이 이재명 정부에 커다란 부메랑으로 돌아올 게 분명하다.
정세은 충남대(경제학) 교수는 "아직 어떤 방식으로 소명하겠다는 걸 밝히지 않고 있는데, 만약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명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국민은 이재명 정부에 크게 실망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juckys@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