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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전남 순천에 자리한 국립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심지어 수석으로 졸업까지 한 나 김한수(가명)는 스물일곱 나이에 서울로 ‘상경’했다. 상경이란 말을 쓰는 게 적절할까? 고향 순천에 있을 때 학교 친 '뉴 SM7 노바' 구들하고는 늘 이 ‘상경’이란 단어 사용이 논쟁거리가 되곤 했었다.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서울로 상경한다’라는 식의 서울을 높이는 말은 사용하지 않기로 스스로 노력해야 하지 않나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이 우연히 목격한 한 장면에 의해 무너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허무할 정도로 단순했는데, 서울, 그중에도 강남, 성수 등 12월 스위스 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 모인 이들의 커뮤니티를 접한 순간이 그랬다. 40층을 훌쩍 넘는 고층 주거시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철의 장벽과 같은 자동문 두서너개를 통과하고 난 뒤, 특별히 입주자에게만 할당된 카드 키를 사용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등,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한두번만 경험하고서도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말았다. 서울은 상경하는 것이라는 아파트부동산담보대출 명제를. 그게 당연한 보통명사와 같은 관용어가 되어버렸다고.
현역 육군으로 입대해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뒤 제대하고, 자기계발이란 이유로 1년 휴학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고, 졸업반이 되었을 때의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철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전문적인 분야로의 취업 기회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앞서 서울 소재 대학원에 진학한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 선배의 권유로 나 역시 서울 소재 대학원에 진학할 용기를 얻었고, 기어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제법 알아주는 명성을 지닌 대학이었지만, 전공이 문제였을까. 서양철학 전공으로 석·박사 통합 과정에 입학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주위 친구와 가족, 주변 관계자는 일제히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20대 후반, 몇년 후면 곧바로 서른에 접어들 나이, 1%주택대출 20대와는 의미와 개념이 아예 다른 연령대에 접어들 텐데, 그런데, 그 나이가 되도록 취업이 아닌 철학을 공부한다는 게 쉽게 응원해줄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내 주변의 이들은 일제히 어두운 표정, 뜨악한 표정을 쉽게 지우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스물일곱 졸업반 때, 서울 소재의 대학원에 철학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지원해 합격해 스물일곱의 가을부터 대학원 석사 과정 학생의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난 대학원생이 결코 피해 가선 안 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기 위해 온종일 학교 도서관 컴퓨터 책상에 앉아 구직 사이트를 검색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거창하게 말해 우주의 기운이 날 도왔다고 말해야 할지, 비교적 쉽고 적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르바이트, 예를 들어 카페, 주유소, 편의점, 근로 아르바이트와 비교했을 때, 서너배 이상 높은 시간당 수당을 받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성공이라 말하는 건 단순히 고액 아르바이트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 업체에 연락해 섭외하고, 시간에 맞춰 대면, 비대면 면접을 보고, 면접까지 치른 뒤, 내친김에 합격 통보까지 받아냈다는 사실이다.
이 작은 성공이 잠시 흔들렸던 내 자존감을 확실히 올려 세웠다. 자존감이 잠시 흔들린 이유는 스물여덟의 나의 삶과 나의 진로, 내가 공부한 전공인 철학을 바라보는 잔뜩 우울한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엔 단지 고액 아르바이트를 매의 눈으로 포착한 운 좋은 신속함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획득한 순간, 자연스럽고 빠르게 상승한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무시당하였다고 말해도 허언이 아닌 ‘철학’이란 내 전공이 그 고액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데 긍정적으로 이바지했다는 점이 내 자존감을 확실히 살려준 것이다.
아르바이트 공고는 ‘한우리 인력사무소’란 다소 고전적인 이름을 가진 구인·구직 플랫폼이 올렸다. 강남구 테헤란로에 자리 잡은 ‘한우리’란 이름의 사무실을 직접 찾았을 때만 해도 내 전공이 그렇게까지 주목받을 줄은 몰랐다. 시간당 4만원이 넘는 고액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던 플랫폼 관리자는 내 정확한 전공을 안 이후로 반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을 전공했다니 정말 잘되었군요.”
“철학을 전공한 게 잘된 거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거창하게 뜻이니 뭐니 하는 말은 그렇고요, 단지 뭐랄까, 철학을 공부한 분들이 이 아르바이트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말입니다. 의뢰해주신 고객들도 그렇군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죠?”
“대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기에 시간당 4만원 이상을 지급한다는 겁니까? 더욱이 집으로 방문해서 하는 일이라면서요?”
처음 모집 공고가 떴을 때부터 관심을 끈 건 바로 전공이었다. ‘철학 전공자 우대’, 요즘 세상에 철학을 공부한 스물일곱, 소위 세상 물정 모르는 취준생을 우대하는 회사나 일자리는 결코, 많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이곳은 철학을 전공하고 사물을 깊이 이해하고, 더욱이 집이란 공간에 관한 정서적 안정감이 있다면 대환영이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난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후, 플랫폼 관리자에게 곧바로 내 연락처를 적어주고 연락을 기다리겠다고 말했고, 불과 4시간 만에 연락을 받았다. 정말 철학 전공이 맞느냐는 확인 질문과 함께. 여전히 석연치 않은 지점인,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로 일은 풀려갔다.
관리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에 관한 말을 생략한 채로 인력사무소 명칭처럼 아날로그적으로 종이에 주소를 적어 그곳으로 가보라고, 일일 아르바이트 시간은 최소 4시간에서 최대 6시간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 즉시 나의 서울 상경 이후의 고액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하루 최소 4시간에서 최대 6시간을 넘지 않는 일을 시작한 나는 처음 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아파트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다음과 같은 혼잣말을 다짐하듯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맞아. 난 일을 하러 이곳에 온 거야.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지. 그것 말곤 없어. 그것 말곤 아무것도 없다고.’
한우리 인력사무소에서 소개한 내 고액 아르바이트의 명칭은 ‘스위트 홈’이었다. 우리 사는 집을 훨씬 따뜻하고 가정적으로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소개받았는데, 내가 4~6시간 동안 정확히 하는 일은 말 그대로 표현하자면 반려동물과 같이 있어주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주로 이뤄지는 지역은 강남이었다. 더 세부적으로 보면 압구정, 성수, 대치, 삼성, 도곡, 청담 근처가 많았다. 그중에도 외부에서 검증받고 내부에서 허락받지 않고서는 결코 들어가기 어려운 철의 장벽과 같은 고층 신축 아파트, 또 그중에도 방 다섯개 이상, 화장실 세개 이상을 기록한 고층의 대형 평수 아파트가 내가 방문하는 아르바이트 장소였다.
‘스위트 홈’ 아르바이트 업무의 핵심은 반려동물이 낮이든 밤이든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을 어떻게든 외롭지 않게, 쓸쓸하지 않게 곁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저녁 시간, 반려동물을 집에 혼자 두고 외출을 나가야 할 이들이 멤버십으로 가입된 ‘스위트 홈’ 서비스를 이용하면, 아르바이트 당사자가 일정의 신분 보장 절차를 거친 뒤 의뢰인의 아파트에 방문해 반려동물과 정해진 시간 동안 같이 있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주원규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GPT)에 “고급 펜트하우스에서 캐주얼한 차림으로 반려동물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후반 남자의 이미지를 유화풍 스타일로 만들어주세요”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처음엔 적응이 쉽지 않았다. 때에 맞춰 급식하는 것도 아니고, 산책을 같이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반려동물이 외롭지 않게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게 오히려 난처했다.
방문한 아파트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기에 동물을 학대나 유기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데, 더 친밀하고 최대한 반려동물을 자극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점이 까다로웠다.
적응이 어려운 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반려동물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견인 개 중 주인과 애착 관계가 심한 개는 주인 가족이 자리를 비우고 나면 남아 있는 나를 낯선 침입자 취급하듯 사납게 짖어댈 때가 있었다. 옆집이 소음 공해로 신고할까 무서울 정도로 짖어대는 개의 소리가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무섭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날 혐오스러운 침입자 취급하듯 짖어대던 개와 6시간을 아예 떨어져 있어도 안 되고, 또 완전히 밀착해서도 안 되는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견뎌야 하는 건 경우에 따라선 서글픈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래도 일은 계속할수록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이 아르바이트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지금까지 난 내내 그 점이 궁금했다. 왜 반려동물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데, 철학 전공이 유익한지, 플랫폼 관리자에게 참고 참다가 그 질문을 던져봤다. 하지만 관리자는 별다른,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했다. 잘 모르는 게 틀림없다. 그래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의뢰인에게 직접, 하지만 최대한 예의 바르게 질문했다.
“그런데요.”
“네, 왜? 더 필요한 게 있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한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뭐가 궁금한데요?”
“왜 철학과인데요?”
“아… 그거요?”
의뢰인은 내가 매우 어렵게, 어렵게 꺼낸 질문에 의외로 간단하고, 허탈하게 답해주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철학이잖아요. 그렇죠?”
“저… 그런데요?”
“네?”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강아지와 같이 있는 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하지만 의뢰인도 그렇고, 플랫폼 관리자도 그렇고, 뭐든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정말 알고 싶은 의문에 관한 답은 해주지 않았다.
이 아르바이트의 현재 정식 명칭은 ―물론 정식이라고 누가 이름 붙여준 적은 없지만― ‘반려동물 도우미’라고 불린다. 서울 소재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나는 초기에 겪은 촌극을 제외하고는 이 일을 1년째 하고 있다. 아직도 답을 구하는 중이다. 내 철학 전공과 반려동물 도우미 아르바이트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아마도 제한된 시간 내에 답이 구해지진 않을 듯하다.



소설가 주원규
‘월급 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메이드 인 강남’, ‘열외인종 잔혹사’, ‘서초동 리그’를 썼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