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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이 탐낸 백토(白土)의 고장 강원 양구. 이곳 백토는 조선 왕실 도자기를 빚던 관요에 공급될 만큼 품질이 뛰어났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왕위에 오르기 한해 전인 1391년 양구 백토로 빚은 도자기에 소원을 빌었다. 백토는 지금도 양구에 거주하는 작가에게만 1인당 연간 300∼400㎏이 제한적으로 공급된다. 이 양구 백토를 다채롭게 활용하는 협동조합 ‘사이 잇는 DMZ마을’ 조은미 대표를 만났다.
“흙은 지나간 모든 생명의 흔적이에요.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러니 소중히 다루고 가치 있게 써 서울중개 야죠.”
서울에서 도자예술 강사로 활동하던 조 대표는 2018년 양구백자박물관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며 백토의 매력에 빠졌고, 2021년 양구군 방산면으로 이주했다. 처음엔 양구백자박물관 레지던시 입주작가로 도자 작업에 몰두했지만, 곧 ‘혼자 작업실에 앉아 있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학생을 가르치던 경험을 후순위채 떠올리며, 주민과 공예를 잇는 가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소박했다. 마을주민이 식사에 초대하면 백토를 가져가 함께 치대고, 그렇게 빚은 소주잔이나 밥그릇을 가마에 구워 선물했다. 백토를 접한 주민은 “이렇게 좋은 흙이 우리 마을에서 나오는지 몰랐다”며 관심을 보였다. 집 앞 백자박물관을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이도 많았다. 한 주민 창업자금대출 이 백토를 알려줘 고맙다며 건넨 가지 두개에 조 대표는 한참을 울었단다. 그 순간 예술이 단순한 창작을 넘어 사람을 이어주는 힘임을 새삼 깨달아서다.



도자기와 양구 짚풀이 만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수업 현장.


계산해주세요 영어 주민과 백토를 연결하고 싶어 수업을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현수막을 내걸어도 수강생 10명을 모으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겨우 모인 주민도 고령층이라 망치질, 톱질, 화기 다루기와 같은 작업에 서툴렀다.
시간이 흐르며 변화가 찾아왔다. 수업에 참여한 농민 김정임씨는 “내 손이 예술가 손이 됐다”며 환히 웃었다고 psp거치 한다. 양구백자박물관 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백자 파편과 백토로 소꿉놀이를 한 김씨지만, 실제로 백토로 무언가를 빚어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방산면 장평리의 전봉순씨는 젊은 시절 나물을 캐 번 돈으로 도자기를 배운 추억을 살려 다시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보조 선생님이 돼 다른 주민을 가르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전씨는 양구 토박이인 이정식씨와 함께 2024년 강원 공예품대전에서 나란히 특선을 차지했다. 지금까지 수업을 통해 40명 이상의 주민이 ‘작가’라는 꿈에 한발 다가섰다.
이제는 수업 신청 공지가 올라오면 곧바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특히 이주여성들은 생업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원데이클래스(일일강습)에 참여하고, 일부는 지속적인 교육을 받고 싶어한다. 수업은 지금까지 10회가량 열렸고, 매회 10∼15명이 참여한다. 4월에는 새로운 과정도 개설할 예정이다.



강원 양구지역 주민이 직접 제작한 주얼리. 백자를 굽고 남은 자투리인 재생백토를 보석 대신 끼운 작품이다.


조 대표는 주민이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2023년 7월 협동조합 ‘사이 잇는 DMZ마을’을 설립했다. 서울에서 했던 디자이너 육성 경험을 살려 조합원 5명과 회원 15명에게 공예 관련 직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연예인 소속사 같은 개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역의 자연과 백토를 결합한 독특한 주얼리도 제작한다. 동네에서 딴 나뭇잎이나 꽃을 본떠 은으로 틀을 만들고, 여기에 백자를 굽고 남은 자투리인 재생백토를 보석 대신 끼운 작품이다. 이 상품으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두차례 펀딩을 진행해 각각 190%·100%의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해안야생화단지’를 조성한 양구군청과 협업해 야생화를 활용한 상품을 개발 중이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백토 도자에 야생화향을 입혀 은은한 향을 내는 디퓨저를 만든다. 향을 추출하고 남은 꽃 찌꺼기는 태워서 유약으로 재활용한다. 지역자원을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주민들은 조향사 자격증도 취득하며 양구를 예술마을로 바꿔가고 있다. 예술을 매개로 한 단단한 사회적 유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상품만 열심히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로컬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지역 안에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핵심이죠.”